그만하면 괜찮다!
제아무리 훌륭한 삶이라도 나름의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우리는 훗날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깨닫는다. 내가 평범한 것들에, 눈에 띄지 않는 것들에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졌더라면 또 다른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지 않는가.
'평범한', '그만하면괜찮은', '적당한', '보통'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섬세한 터치다.
나는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이 더 이상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가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만하면 괜찮다
(뭣이 중헌디)
우울에 빠져 있을 때,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낄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의 비범한 정신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결점과 실패만을 들여다본다. 그들 내면의 삶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기에는 우리의 상상력이 지독히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울해 있을 때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자기변호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만다.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며 각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다.
판단을 유보하고 삶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둔 귀한 자질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마라.
-다이달로스
화려하게 빛나는 다른 이들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낙심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미묘한 중용을 기꺼이 받아들인 성공 회의론자들에게 더욱 공감한다.
황금의 중용을 추구한다는 것이 현상 유지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끔 나는 이카로스에게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고 충고한 다이달로스의 충고에 공감한다. 그러나 또 어떤 때는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고 파도를 만지고 싶어 하는 이카로스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두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누군가는 중용이나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을 추구하는 것은 도전을 피하려는 비겁한 핑계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평범함이란 이도저도 아닌 회색 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며, 수많은 보잘것없는 사람들, 삼류작가나 아류들과 같은 부류로 묶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아무리 개인의 성공과 행복의 이상을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한들, 현실을 무시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삶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 자신이 우리가 품은 원대한 야망의 원인 결과라고 해도, 우리가 열망하는 진리와 성공은 대개 타인의 성공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All or Nothing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 [몰락하는자]가 이를 완벽하게 예증한다.
이 소설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촉망받는 두 음대생이 세기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 베르트하이머와 화자인 '나'는 잘츠부르크 음대에서 거장 호로비치에게서 피아노를 사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천재 글렌 굴드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들의 예술적 재능을 의심하고 절망에 빠진다. 글렌 굴드를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결국 피아노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한 사람은 끝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두 사람은 포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었다. 자신들에게 천재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꿈을 포기하는 편이 그들에게 더 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가능성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실패와 원망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다.
이 소설의 화자에게 경쟁이란 '올 오어 낫씽 All or Nothing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면 어중간한 연주자가 되느니 피아노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리스
나는 한 피아노 연주자의 바로 윗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우연찮게 이런 영혼의 교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독기 어린 경쟁에 집착했던 베른하르트와 달리,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는 이제 대중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여덟 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그는 대중으로 부터 얻는 영광 대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성취를 통해 충만한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즐거움이 점차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는 즐거움으로 치환된 것이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으로서 오롯이 자신만의 기쁨을 만끽하던 그 연주자는 다양한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의 삶은 [몰락하는 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극적 삶과 대척점에 있다. 결코 대중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탁월함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레 (탁월함 혹은 도덕적 미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뿐만 아니라 행복도 이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계산적이지도 세속적이도 않은 '아테레'는 타인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탁월함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위대함과 소박함, 비범함과 평범함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다.

타 인
지나치게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지나치게 추한 사람도 없다.
-게오르크 뷔히너
낯선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그를 천천히 관찰하고, 판단을 유보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경청하고, 그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존중하는 일의 시작이다.

상대에 대한 판단 유보
그만하면 괜찮다 VS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는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라고 속단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주인공으로 그의 인생 전체에 하나의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부당하고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판단 유보는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경쟁심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
우리가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들을 우리가 정해놓은 성공과 실패의 범주로 분류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떠들썩하고 눈부신 성공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에만 집중해 그것을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력서로만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일이다. 엄격한 평가 등급에 다라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면 기존의 가치도, 제도적 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의 가치를 흔드는 것이 '비범한 평범함'이 할 수 있는 역할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타인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헤아려보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한 훈련이다. 나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데 깊이 동의한다. 더욱이 그것이 지나치게 비판적인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로 쓰인다면, 그때도 여전히 우리는 그의 삶을 성공이나 실패로 성급하게 단정지으려 할까?

우리는 왜 쉽게 이해되는 예술 작품은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서, 한 인간에 대해서는 그토록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려 할까? 예술에 공감하며 수많은 감정과 신념을 투사할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앙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이나 두려움과 관계없이 타인을 소설 속 인물처럼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타인에 대해 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타인에게서 예상을 벗어난 모순적인 면을 발견하고 당황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멈추거나 유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몸짓, 헤아릴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에게 관대한 만큼
타인에게도 관대하기를
나는 성공과 실패,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과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마음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단정적으로 획일적인 판단 기준을 버리고 나니,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고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표현으로 타인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경험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바깥으로 드러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헤아리게 되고 그를 보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것이 무엇인지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면 관심의 크기와 상관없이 성급한 판단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소소한 것, 하찮은 것, 다른 것, 심지어 무관심한 것을 인정하는 일은 누군가가 가진 경험의 역사를,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이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자만하는 대신, 판단을 유보해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하찮게 보이는 것이 진부한 판단 방식에서 우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대단하고 중요한 것의 폭정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나 역시 지니처럼 여섯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돌연 모순적인 태도를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면 상상력이 굳어버리고 극도로 쩨쩨해지면서 관대함은 어디론가 사라 져버린다. 타인을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왜곡하는 사람의 모습은 유감스럽게도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나 역시 그녀처럼 얼마나 많은 타인을 내 식대로 함부로 재단했던가. 나의 잘못에 관대했던 만큼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정하고 무자비했던가.

누가 현명한가, 현명하지 않은가? 용서할 만한 일인가, 원망할 만한 일인가? 그다지 괜찮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많은 사람과 사물을 등한시해왔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
오직 그뿐이다.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중에서-

PS
'내로남불' 이라는 4자성어?가 떠오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다.
뉴욕 타임스에도 이 '내로남불'이 기사화 되었다는데 찰지게 잘 만들어진 4자성어이다.
즉 나에게는 비단결처럼 너그러우면서 타인에게는 냉혹하리만큼 냉정하고 날카롭게 판단하는 것이다.
나의 잘못에 관대했던 만큼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정하고 무자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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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 /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 /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선망!? 젊은 시절에는 주인공과 영웅을 선망하고 자신의 희생정신을 떠들썩하게 과시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반면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은 이상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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