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NEWS 그리고 민주주의 /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by Babe Lim 2024. 7. 19.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 

무엇이 뉴스인지 누가 결정하는가?

 

신문과 방송을 제작하는 '언론 엘리트'가 결정한다. 일상 언어로는 저널리스트 또는 언론인다. 

저널리스트는 신문사와 방송사 등 '언론기관'에서 활동한다. 정당, 정치인, 정부, 관료, 공공기관 관련 정보와 사실 중에서 대중에게 알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뉴스로 만든다. 사실만 선택해 전달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관점으로 사실을 해석하고 그렇게 해석한 사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언론이 무시하면 어떤 사실도 뉴스가 될 수 없다. 뉴스가 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저널리스트가 선택한 사실만 사실이 된다.

언론 엘리트는 다른 분야의 엘리트와 교류한다. 대통령부터 장관, 국회의원, 정치비평가, 경제전문가, 기업인, 과학자와 여론조사 전문가까지 필요하면 누구든 취재한다. 기자를 함부로 대하는 정치인은 없다. 존경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다. 

저널리스트는 취재한 사실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뉴스를 만들 때 저널리즘 규범을 의식한다. 몇 가지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 저널리스트가 아닌 사람도 안다. '사실을 존중한다' '정치권력과 광고주와 수용자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적 주체적으로 판단한다.' '이해관계와 이념이 대립하는 문제를 보도할 때는 중립과 균형을 지킨다.' 

조심하자. 

그런 규범이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지킨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규범을 지키는 저널리스트가 거의 없다. 

 

언론 몰락의 증상

극소수 공영방송을 제외한 언론사는 모두 사기업이다. 언론 사기업의 대주주 또는 오너는 대한민국 0.0001 퍼센트 부자다 대통령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권층이다. 그들의 고객은 재벌 대기업 광고주다. 대주주와 광고주는 대체로 국힘당을 지지한다. 국힘당이 부자와 강자의 이익을 지키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언론사 사주는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한테 경영과 편성을 맡긴다. 그래서 어떻다는게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기자는 괴롭다.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공영방송과 극소수 독립언론 말고는 어는 언론사도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규범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는 데 이젠 그마저 그만두었다.

 

저널리즘의 해방 

상황이 달라졌다. 과학자와 엔지니어와 창의적 기업들 덕분이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기술, SNS와 영상 플랫폼이 언론기업의 저널리즘 독점을 해체했다. 이젠 누구나 저널리즘 활동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저널리즘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커뮤니티 게시판, 카톡 등 다양한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통해 뉴스를 전닳한다. 

시민들은 언론이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언론이 어떤 기준을 적용해 뉴스 가치가 있는 사실을 선택하는지,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사실을 해석하고 활용하는지도 알고 있다.

 

저널리스트 김어준 

 새로운 저널리스트의 대표 인물은 김어준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겸손은 힘들다는 매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 실시간 접속자가 20만명이 넘는다. 지난 총선에서 MBC 개표방송 실시간 접속자가 17만명 정도였던 사실과 비교해보라. 김어준은 대한민국 최강 저널리스트다.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는 일을 그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언론이 모른 체하는 사건을 매일 다루면서 말한다. '이건 중요한 뉴스입니다.' 

김어준이 외모만 장비 같은 게 아니다. 조조의 대군을 멈추게 했던 장판교의 장비처럼 언론의 편파보도돠 여론조사 공세를 막아냈다. 여론의 흐름을 대중에게 알리고, 민주당 후보를 출연시켜 인지도를 높였다. 그들의 유튜브 방송 구독자를 늘리고 후원금 계좌를 채워주었다...<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민주당과 조국당의 온라인 선거대책 본부였다. 

이런 활동은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 규범에 어긋난다. 

그렇다. 김어준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 사실을 토대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한다. 저널리즘 규범을 모두 거부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언론보다 더 철저하게 준수한다. 김어준은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한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민주주의?

국민은 이념적 균질 집단이 아니다.

국민을 균질 집단으로 만들면 사회는 히들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마오쩌둥의 중국, 김일성 일가의 북한처럼 된다. 국민은 복잡한 이질 집단이다. 사람마다 정치적 이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 어떤 정책도 모든 국민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민주주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누가 옳은지 가릴 방법은 없다. 그런데 정부는 하나뿐이다. 

이념의 다양성은 정부의 단일성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그 충돌을 해소하고 완화하는 방법과 절차이다. 무슨 이념이든 다 표현할 수 있게하고,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당을 만드게하고, 다수의 신임을 받은 정당이 법이 정한 기간 동안 국가를 운영하게 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긴 다른 정당이 국가권력을 넘겨받게 한다. 이러한 '무한반복 게임'으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극단적 이념'도 배척하지 않는다. 

극단적 이념을 왜 극단적이라고 하는가? 극소수만 이해하고 찬성하니까 극단적이라고 한다. 그런 이념은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다.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다수의 이해와 지지를 얻으면 사회의 통념이 된다. 노예해방, 인민주권, 페미니즘도 처음에는 극소수만 옳다고 여긴 '극단적 이념'이었다. 

민주주의 배겨하는 것은 극단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을 폭력으로 공격하고 말살하려는 독선과 불관용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상관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폭력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중에서)